뒤늦게 이타미 준의 바다를 보았습니다. 저에게 이타미 준이라 하면 제주도에 갔을 때 예배를 드렸던 방주교회가 생각나는데요. 영상으로 다시 보니 참 반갑고 그때 드렸던 예배의 공기가 기억 나는 것 같습니다. 아 영화에 대한 글이다보니 스포일러라고 느끼실 수 있으니 미리 양해구합니다.

일체 말 하지 마라…일절 맡겨야 한다 (1971년 34세)

이타미 준의 어머니는 이타미 준에게 새집의 건축을 맡기시며 여덟 형제가 되는 가족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지금의 이타미 준 건축가님이 있기까지 어떤 과거를 보냈을지 알기란 쉽지 않겠지만 재일교포로 일본에서 생활하셨던 선생님은 31살에 건축회사를 시작한 약력이 나와 있으나, 일을 규칙적 수주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거라 생각합니다. 영상에서도 재일교포로 당시 일을 수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이타미 준 선생님께 건축을 의뢰하신 그분의 어머님은 건축 설계를 시작한 아들에게 어떠한 참견이나 요구가 없이 온전히 작업에 집중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 주신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이타미 준 선생님만의 포트폴리오가 완성될 수 있도록 믿고 힘을 실어 주신 것이죠. 화면상으로 보았던 가로로 긴 형태의 집은 지금 이 시대에 보아도 현대적이고 독창적인 주택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어머님의 집을 완성할 수 있었고, 물론 그 이후 여름에 너무 뜨거운 유리 지붕에 대한 햇빛과 환경에 대한 피드백을 통해 약간의 구조변경이 있었다고 하지만요.

이타미 준의 정체성

이타미 준이라는 이름에 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성 이타미는 오사카 국제공항으로 일본으로 왔던 그 기억을 떠올리며 자유로운 국제인으로 건축가가 되자 라는 이름으로 이타미라는 성을 사용하게 되었고 준이라는 이름은 그 당시 친하게 지냈던 이의 같은 한자 준을 썼다고 하는데요. 통상적으로 건축회사는 건축사의 이름을 따라 회사 이름을 정하곤 하는데, 그 당시 이타미 준 선생님의 한국 이름인 유동룡의 무송 유는 일본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활자라서 다른 이름을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졸업까지만 해도 유동룡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지고 졸업하셨다는 이야기를 보며, 가족이 얼마나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살려고 했는지, 그 정체성을 지키려 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도쿄에서 태어나고 교육을 받았음에도 여권을 한국 여권으로 그저 한국이 좋으니 한국 여권으로 하자라는 말을 남기고 그렇게 살아온 모습을 보니 그의 업적과 기행은 참 놀라운 것 같습니다.
옛말에 이름대로 된다는 어르신들의 표현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름을 지을 때 심사숙고 하는 것 같은데요. 돌이켜보면 이 영화를 보며 이타미 준 선생님은 이름대로 정말 국제적인 건축가의 삶을 사셨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 티브이에서 외치던 ‘신토불이, 우리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표제가 왠지 모르게 촌스럽다고 느꼈을때가 있었습니다만, 시간이 지나고나서보니 ‘00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임을 많이 공감하게 되는데요. 이타미 준 선생님도 한국성을 계속 탐구하시며 그분의 건축에 어떻게 하면 한국성을 적절히 담아낼 것인지 고민하신 모습이 건축의 문외한인 제게도 느껴질 정도로 인상 깊었습니다. 또 한국성을 현대화시킨 그분의 건축이 독창적이면서 현대적으로 전 세계에도 소개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이타미 준의 인생을 사셨던 것 같습니다.

시간과 기억을 가져오는 건축

일본의 바 건축에 대한 장면이었습니다. 건물 내부에 사용된 벽돌을 이야기하며 한국의 서울대 동숭동 캠퍼스가 관악 캠퍼스로 이전 시에 중앙도서관에 사용되었던 벽돌을 일본으로 가져와 건축했다는 내용이었는데요. 그 장면에서 벽돌의 시간과 기억을 새로운 건축에 가져오면 그 건축물에서 또 시간과 기억이 이어질 것이다라는 말들. 그 말이 참 기억에 남았습니다. 건축이라는 것이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임에도 어떤 시간이 오래된 재료를 사용함으로 시간과 기억을 빌려 새로운 공간에 이식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 참 멋지게 다가왔습니다. 현대의 건축이나 제조, 창의적 분야에 있어서 제작을 염두에 둔 효율과 예산에 역행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메테리얼에 대한 애정

영화에서는 이타미 준 선생님의 건축 재료, 물질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따뜻함으로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투박한 돌이라는 자연을 채석장으로부터 빌려 쓰고 다듬어서 어떻게 건축에 반영하는지 또 그것으로 어떻게 건축물에 사람의 온기와 야성을 함께 담아내는지에 대해 말해주고 있는데요. 사무소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인터뷰가 참 따뜻하게 남는 것 같습니다.
디자인을 하면서 어디서부터 또는 어떤 환경으로부터 디자인을 시작할 것인가가 굉장히 다른 결과물을 만드는 것을 느낍니다. 때로는 특정 지류로부터 디자인을 시작할 때도 있고 때로는 그래픽의 사용 방안을 생각하며 디자인을 하기도 합니다. 이타미 준 선생님의 채석장으로부터 시작된 건축 과정은 그분이 지었던 여러 건물을 통해 어떻게 발현되었는지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저는 돌의교회를 보며 돌이라는 소재가 그대로 노출돼 덩어리 감을 드러난 것을 보며 꽤 큰 건물임에도 참 편안한 것 같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바람 같은 내러티브

이 다큐멘터리는 8년간의 촬영 시간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도 이타미 준 선생님의 건축에 대한 시간성은 잘 담겨있으면서도 또 바람 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교차편집으로 다큐멘터리를 보며 한 사람의 인생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타미 준 선생님의 여러 건축물을 담아내는 그 담대한 카메라의 시선은 꼭 그 장소에 가보고픈 마음이 들 정도로 좋았습니다.

제주도 바람이 느껴지는 다큐멘터리이었습니다. 한 건축가의 고뇌와 삶이 잘 담긴 다큐멘터리를 보며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여유가 되는 비 오는 오후에 감상해보시길.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니 제주도에 다시 가고 싶어졌습니다.

*사용된 이미지는 영화와 관계 없는 직접 촬영한 제주의 바다입니다.